봉화산 정토원
   
   
 









'바보 전태일'의 분신과 '바보 노무현'의 투신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09-06-25 17:29     조회 2,459
    '바보 전태일'의 분신과 '바보 노무현'의 투신
    [사는 길·죽는 길 ①] 그들은 왜 그래야만 했던가, 그 필연성
    09.06.09 23:36 ㅣ최종 업데이트 09.06.15 10:24 류순하 (iorana)

    긍정할 수 있는 자살이 있을까?

    비극 아닌 자살이 가능할까?

    더구나 위대하다, 그렇게 찬양할 수 있는 자살이 있을 수 있을까?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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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내 전태일 열사 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태일의 마지막 말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으나, 사실은 '배가 고프다'였다.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자기가 못다 한 일, 꼭 이루어달라는 부탁을 하여 '약속'과 '맹세'를 받아낸 뒤, 이승에서 숨쉬기를 멈추기 직전, 그는 '배가 고프다' 했다. 분신 전날 아침에 라면 한 그릇을 먹은 뒤, 그때까지 그는 공복이었다. 죽어라 일하면서도 배가 고파야 했다. 죽어라 일해야 하면서도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을 호소하며, 더도 말고 근로기준법대로만 해 달라 요구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업주와 공권력, 양편 모두로부터 무자비하게 다가온 폭력이었다. 그로서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그가 분신한 그날도 그와 그의 동료들은 그 폭력과 맞서야 했다.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한다 - 그는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스물두 살, 젊은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수요일 오후 1시 30분,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서 자기 몸에 석유 한 되를 붓고, 그 몸에 성냥불을 그어댄다. 그로서 가능한 모든 발버둥질 끝에 맞닥뜨리게 된 막다른 골목에서 감행한 실로 장렬한 산화였다. 그리고 이름 없는 공돌이, 전태일은 불멸의 역사적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의 산화는 그야말로 기폭제였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분노의 능력도, 현실에 대한 열정도, 이상에 대한 야망도 없고, 이성적 사유나 그에 따른 실천 능력마저 대충 거세되어 버린 듯한 요즘 대학생들과는 달랐던 당시 대학생들이었다. 서울법대가 맨 먼저였고, 서울상대와 서울문리대가 그 뒤를 이었다.

     

    요즘 같은 한총련이니 한대련이니 하는 자율적인 학생 조직도 없던 때였다. 자기 몸을 바친 전태일의 피맺힌 부르짖음에 곧이곧대로 감응하여 분노한 학생들의 자생적 움직임이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여드레가 지난 11월 21일, 서울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을 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빨랐고, 격렬했고, 확고했고, 위력적이었다. 서울대학교의 휴교령은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곧 전국의 모든 대학과 종교계로 번져갔다. 거센 바람 부는 날의 산불 같았다.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한국에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되었다 -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협의적이다. 노동운동 분야만은 아니었다. '저 암울했던 1970년대의 시작과 함께, 전태일이라는 청년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한 이름 없는 피복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한국은 눈을 틔웠다(이성부). 정신의 눈이었고, 이성의 눈이었다. 보아야 할 것들을 비로소 보기 시작했고, 더불어 알아야 할 것들을 비로소 알아가기 시작했다. 개안이었다. 그 시대를 눈 뜨고 산 사람치고 전태일 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쉽지 않았다. 주체적 시민의식의 개화였다. 그 정화는 1987년 유월항쟁이었다. 우리는 비로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역사적 기폭(起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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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지난달 29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식 직후 사저로 향하는 동안 유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대통령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39년이 지나간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 노무현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봉하마을 뒷산, 그가 어린 시절에 청운의 꿈을 키웠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산화했다. 더불어 아직 살아 있는 송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는 불멸의 역사적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산화는 그야말로 기폭제였다. '마법에 걸린 나라(조기숙)', 대한민국에서 아닌 게 아니라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똥과 된장마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펄쩍 놀라 깨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와, 비로소 '조중동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의 눈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꼭 보아야 할 것들을 보기 시작했고,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노무현의 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안이었다.

     

    이어서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꾹 다물고 있기나 했던 입들이 비로소 열리며, 말해야 할 것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언어로 만들어 내놓기 시작했다. 고사상태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결코 도덕적일 수 없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노무현의 도덕적 가치를, 그 가치의 주창자이며 실현자인 노무현을 죽이려 한 이명박에 대하여, 이명박이 알뜰하게 망가뜨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이명박적 가치를 엄호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에 대하여, 그리고 노무현이 추구해온 가치에 대하여, 노무현의 가치와 이명박의 가치, 그 차이에 대하여, 그 차이의 치명성에 대하여, 그들이 할 말, 해야 할 말은 많았다. 그 언어들이 봇물을 이뤘다. 거셌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이 알뜰하게, 샅샅이, 조목조목, 극적으로, 확실하게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시야의 모든 풍경 가운데 뒤집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노무현 자신의 운명부터 그랬다. 이끄는 그대로 질질 끌려갔을 경우, 그는 이명박들의 기획대로, 관제 피의자로서 만신창이가 되어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차라리 죽느니만도 못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개인의 불행만은 결코 아니다. 그의 지지자들이나 그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의 불행만도 아니다. 명색 대통령으로서 그의 치세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그의 모습은 적어도 유쾌할 수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불행이며,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불행이며, 동시에 이 나라 역사의 불행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산화와 더불어 그는, 그의 생애 그 어느 때보다 더 반듯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제 저는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아닙니다. 이제 저를 버리십시오.' 그렇게 통절하게 부르짖었던 그는 마침내 시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의 단호한 상징이 되었다. 이전에는 기껏 해봐야 추종자들만의 노무현이었으나, 이제는 온국민의 노무현이 되었다.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운명의 극적 전환이었다.

     

    '바보 전태일'과 '바보 노무현'

     

    서로 2년쯤을 사이에 두고 이 땅에 태어난 전태일과 노무현은 여러 면모에서 닮은 점이 많다. 서로 바보를 자처했던 것부터 그렇다. 그 이유마저 닮았다.

     

    전태일이 주동이 되어 만든 최초의 조직 이름은 '바보회'였다. 왜 '바보'였던가. 전태일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바보처럼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는 바보다.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토록 엄청난 일을 벌이려는 우리를 사람들은 바보라 한다. 그렇다면 좋다. 우리 한번 바보답게, 되든 안 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

     

    노무현이 '바보 노무현'이 된 것도 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지역구도 타파라는 필생의 목표를 달성해내기 위해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골라 '호남당 문패'를 달고 부산에서 출마하여 낙선하기를 되풀이했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붙여준 별명이었고, 노무현은 그것을 받아들여, 자타공인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꼭 같이 가난했던 '바보 전태일'과 '바보 노무현', 그들은 꼭 같이, 실로 버겁기 짝이 없는 현실적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고집쟁이였고, 그런 고집쟁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꼭 같이 스스로 산화했다. 하나는 분신에 의하여, 다른 하나는 투신에 의하여. 그리고 두 사람은 꼭 같이 불멸의 역사적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전태일과 노무현이 닮은 점은 또 있다. 전태일이 분신 후, 병상에서 그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했다는 말에 '어머니, 조금도 슬퍼 마세요'와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가 있다. 이것은 노무현의 유서에 나와 있는 '슬퍼마라'와 '원망하지 마라'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보다 더 기막힌 공통점은 양편 모두 불멸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 이 나라 역사에 획기적인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 같지 않다. 실로 많은 사람들의 절박한 기도를 듣고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미증유의 국면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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